[W기획_도전하는 여성(24)] “두 자녀 육아에도 놓지 않았던 키… ‘女軍 정책발전’ 기적 울릴 것”

입력 2017-07-20 11:00수정 2017-11-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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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역사상 최초 여군 함장 안희현 소령

1999년 사관학교 첫 여성 생도로 입교

회식·야근까지 아이 데려가며 ‘악착육아’

남성중심 조직이라는 해군 특수성 깨고

지난달 소해함 함장으로 발탁 8월 취임

탄력근무 도움 됐지만 일가정 양립 먼 길

여군 고위직 진출 위한 제도발전 기여할 것

▲해군 최초로 여군 함장으로 선발된 안희현 소령이 소해함 앞에서 여군 전투전문가로 대한민국의 바다를 수호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안 소령은 지난 6월 해군 전반기 장교 보직심사위원회에서 소해함인 고령함의 함장으로 발탁돼 오는 8월 취임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해군)

‘제1호’,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기란 쉽지 않다.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에겐 더욱 귀한 수식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유리천장을 깨거나, 남성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여성이 주목받게 되는 이유다.

최근 여성비율이 7%밖에 되지 않는 조직에서 당당히 리더자리를 꿰찬 여성이 있다. 남다른 열정과 끈기, 투사 같은 기질,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가지고 여군(女軍)의 삶을 선택해 대한민국 해군 최초 여군 함장이 된 안희현 소령이다.

안 소령은 지난 6월 해군 전반기 장교 보직심사위원회에서 소해함(450톤급 기뢰제거함)인 ‘고령함’의 함장으로 발탁돼 오는 8월 취임을 앞두고 있다. 해군의 여군 함장 탄생은 2001년 여군 장교가 처음으로 함정에 배치된 이후 16년 만이다.

여군의 삶을 선택한 것 자체가 어쩌면 여성에겐 도전일지 모른다. 열에 아홉 이상이 남성인 조직, 그 틈바구니에서 남성 못지않은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해 힘든 훈련을 이겨내며 성장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안 소령 역시 치열한 삶에서 버텨내고자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면서 스스로 단련시켜나갔다. 남성 중심 조직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고 대담한 여성으로 성장한 안 소령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해군의 첫 여군 함장… “해군이면 군함을 타야” = 안 소령은 고등학교 3학년 당시 해군사관학교(이하 해사)에서 처음으로 여자 생도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해사에 지원, 1999년 해군사관학교 57기 생도로 입교했다. 4년간 사관생도 교육을 받고, 2003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안 소령은 소위 임관 후 구조함 항해사로 군함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여군이 탈 수 있는 함정이 3척(구축함, 군수지원함, 구조함)으로 한정돼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침몰한 함정과 항공기 탐색ㆍ인양, 예인, 해상화재 진압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함이었다. 이후 안 소령은 구축함 유도관, 초계함 작전관, 호위함 전투정보관, 상륙함 부함장 등의 함정 근무를 지속했다.

“해군에는 다양한 직무가 있습니다. 보급이나 정훈 등 육상지원병과로 가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해군이라면 배를 타는 것이 핵심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항해병과에는 여군 동기 6명만 남아있는데,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군복이 부끄럽지 않도록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인, 동료로부터 신뢰를 받는 장교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따뜻한 리더십으로 승조원들과 소통할 것” = 안 소령은 8월이 되면 ‘고령함’의 함장으로 취임한다. 그는 ‘고령함’ 지휘권을 갖고, 50여명의 승조원과 함께 장시간 해상에서 작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소해함은 폭발 위험성이 많은 기뢰를 다루는 함정으로 리더로서 위기대처능력이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리다.

“소해함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승조원 50여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함장으로서 과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함장 내정 이후 항상 하고 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내리는 판단은 항상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직 군 경력이 짧은 내가 함장으로서 가져야 할 리더십은 ‘따뜻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승조원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고령함을 한 가족처럼 이끌어 나갈 계획입니다.”

항해병과 여군 동기 6명 중에서 가장 먼저 함장의 타이틀을 거머쥔 안 소령은 그 책임감과 무게도 남다르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사관학교 입교하면서부터 해군의 첫 여군으로서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행동이나 업무를 하는데 있어 더욱 노력했습니다. 현재 남군 동기들은 함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나 역시 같은 직책을 부여받았을 뿐인데도 많이 부담되는게 사실입니다. 여군으로 처음 함장 직책을 수행하는 만큼 내가 잘해야 앞으로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임무완수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두 딸 아이 둔 워킹맘… 야근도 애들과 함께 = 안 소령은 워킹맘이다. 2008년 1월 해사 1년 선배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현재 두 딸(7세, 6세)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육아는 안 소령의 몫이었다. 안 소령에게 워크앤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가 어떠냐고 묻자 “힘들지만 버텼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해군 특성상 함정이 출동을 나가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짧게는 1~2주일, 길게는 한 달간 작전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남편은 해병대 장교로 근무지가 달라 함께 있기 어려웠고, 부모님들도 일하다 보니 출산 후 혼자 육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육상보직과 해상보직을 적절히 선택해서 군생활을 지속해왔습니다.”

안 소령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면 더 이상 배 타는 보직만 고수할 수 없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도 필요했다. 육아휴직 후 복직 시에도 상급자와 면담을 통해 육상직을 선택했고, 함대의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전비전대 대잠전술반장, 정보작전참모 등을 지냈다. 지금은 합동군사대에서 교육 통제 장교로 업무를 하고 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아이들은 항상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회식 자리에도, 야근할 때도 아이들을 데려가서 근무했습니다. 사무실 동료들이 불편했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 패턴 탓에 아이들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출퇴근하고 야근까지 해 잠이 부족할 때도 많았지만, 아직까지 잘 커주고 있어 고마울뿐입니다. 최근 탄력근무제를 쓰면서 유치원에 보내고 여유있게 출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돼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함장 직책을 수행하는 동안은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주기로 해 육아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가 함정 근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왔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안 소령은 육아 때문에 그만두는 여군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해군에선 부부군인의 경우 가능한 범위내에서 동일한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남편과 부인이 동시에 함정근무를 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만 4세 이하의 자녀를 둔 여군은 연고지를 선택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탄력근무제도 시행 중이다.

“해군 내 여성정책이나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탄력근무제가 굉장한 도움이 됐습니다. 일과 육아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아직 해군에선 여군의 역사가 짧아 정책이나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고위직까지 진출한 여군이 없는게 현실입니다. 여군정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앞서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설명>

군 최초로 여군 함장으로 선발된 안희현 소령이 소해함 앞에서 대한민국의 바다를 수호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안 소령은 지난 6월 해군 전반기 장교 보직심사위원회에서 소해함인 ‘고령함’의 함장으로 발탁돼 오는 8월 취임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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