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냉가슴 앓는 기업들…일본의 해법은

입력 2017-05-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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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공공·민간을 불문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하는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노동계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한편에선 우려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게 되는 반면 구체적 대책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신규 채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고용시장 활성화 대책이 되레 고용시장을 경직시킬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억눌렸던 비정규직 문제가 국가적 사안으로 자리매김됨에 따라 적극적인 대처는 불가피하게 됐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컨트롤 타워로 종합적인 고용시장 대책 마련에 착수했지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단계로 정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가까운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궁극적인 물음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일본은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데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노동 인구 감소로 인력난이 심각해지자 아베 신조 정부는 “일본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며 노동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시대에 뒤처진 노동시장 유연화 카드가 바로 그것이다.

올 3월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동일 노동·동일 임금’ 적용 △장시간 노동 강제 규제 △고령자 취업 촉진 △외국인 인재 영입 장려 등 9개 분야의 노동개혁 방안을 내놨다. 주목할 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 ‘일자리 창출’인 만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이다. 여기에는 정부 차원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기본급과 수당, 복리후생 등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에 격차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개별 기업에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이지만, 우선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에 있어서 정규직과의 차별을 점진적으로 좁혀감으로써 급작스러운 ‘비정규직 제로화’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일환으로 일본 정부는 2015년 후생노동성 산하에 ‘정규직 전환·처우 개선 실현 본부’를 설치했고, 작년 말에는 ‘동일 노동·동일 임금 지침안’을 만들었다. 이 지침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대한 합리적 판단 기준을 나타낸 것으로 기업들은 이에 근거해 기본급과 수당, 복리후생, 그외 교육훈련 등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기고용 풀타임 근로자(정규직)와 동일한 조건의 기간제 근로자 또는 파트타임 근로자에게는 동일한 기본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여기에는 근로자의 직업 경험과 능력, 실적 성과, 근속 연수 등이 감안되어야 한다. 수당도 마찬가지다. 회사 실적 기여도에 따라 지급되는 상여금이나 직책수당, 위험수당, 특근 수당, 시간외 수당, 통근 및 출장비, 식비 등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차등이 없어야 한다. 그외 법정 외 연차 휴가나 경조 휴가, 건강검진 등에 따른 휴가 시 유급이 보장되어야 하는 등 복리후생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일본의 이런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침은 유럽연합(EU)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한계는 남는다. 비정규직 처우 차별 문제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에는 EU의 판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아무리 처우를 정규직과 똑같이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에 대한 동일 노동·동일 임금 원칙은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력의 첫 걸음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끊임없이 개선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투명한 형태로 정부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노력에 부응하는지가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4월 기준으로 일본에서 임원을 제외한 근로자 5402만 명 중 정규직은 전년 동기 대비 47만 명 증가해 3385만 명, 비정규직은 4만 명 증가해 2017만 명이었다. 비정규직 비율은 37%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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