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07. 소서노(召西奴)

입력 2017-05-0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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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아내•온조의 어머니…고구려•백제 건국 주역

소서노(召西奴, B.C. 66∼B.C. 6)는 백제의 건국 시조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의 어머니, 백제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시조모(始祖母)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건국신화로서 백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비류와 온조의 이야기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북부여에서 졸본부여로 쫓겨오면서 시작된다. 당시 왕은 주몽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왕이 죽은 후에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이후에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인 유류(孺留)가 찾아오자 설 곳을 잃은 비류와 온조는 남쪽으로 떠났다. 온조는 한수 남쪽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미추홀이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살 수가 없으므로, 이후에 비류 일행은 위례에 귀부(歸附)하였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백제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즉위조에 따르면, 주몽이 졸본부여에 와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하였고, 세주(細註)에 “혹은 주몽이 월군(越郡)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고 하였다.

온조와 비류의 계보에 대해서 더 자세한 내용은 뒤에 나온다. 비류의 계보에 대한 세주에 의하면, 그들의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왕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고, 그의 어머니는 졸본부여 사람인 연타발(延陀勃)의 딸인 소서노이다. 즉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는 비류이고, 둘째는 온조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부여에서 과부로 지냈다.

그러다가 주몽이 전한(前漢) 건소(建昭) 2년(B.C. 37) 봄 2월에 졸본부여로 와서 고구려(高句麗)를 세우고, 소서노를 왕비로 삼았던 것이다. 소서노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것을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총애하고 후하게 대접하였으며, 그녀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자기 자식처럼 대했다. 그러나 이는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친아들인 유류가 오기 전까지였다. 주몽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이는 유류였던 것이다.

비류는 동생 온조에게 말하길 “처음 주몽이 북부여에서 이곳 졸본부여로 도망하여 왔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재산을 기울여 나라를 세우는 것을 매우 많이 도왔다. 그런데 지금은 유류가 와서 주몽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터이니 우리는 군더더기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남아 있기보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따로 도읍을 세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하였다. 비류와 온조는 소서노와 함께 남쪽으로 왔다. 소서노는 온조왕 13년(B.C. 6)에 61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처럼 소서노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였을 때는 왕비로서,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였을 때는 왕의 어머니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여인이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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