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이미지의 반전(反轉)

입력 2017-04-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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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본 수컷 라이온 킹의 늠름한 이미지가 과장과 미화(美化)의 결과물임을 알게 된 순간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수컷 사자의 멋들어진 갈기는 교미기에 암컷을 유혹하는 데만 주효할 뿐, 사냥하는 데나 새끼들을 돌보는 데는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자 무리는 암컷의 헌신에 의해 생존을 이어가고, 암컷 주도 하에 번성해 나간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자뿐이랴. 의좋은 부부애를 상징하는 원앙도 알고 보면 수컷은 철저히 가부장적 권력을 행사하고 암컷에게는 정절(?)을 강요하면서, 수컷 자신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바람을 피우는 이중성을 보인다고 한다. 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진 비둘기 또한 실제로는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데다 때론 포악하기까지 하다는 데야.

이미지의 반전은 동물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식물에도 있다.

몇 해 전 일본에서는 생의 모든 욕구를 상실한 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식물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를 일컬어 ‘초식남’이란 이름을 붙인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눈에 식물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식물의 에너지 수준이 낮으리라 짐작하는 건 전적으로 우리네 오해임이 분명하다.

봄이 오면 농촌에서는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한 종류의 풀이 한 지역을 점령하고 나면, 다른 종류의 풀은 얼씬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격렬한 영토 싸움의 현장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실상은 더욱 맹렬하고 치열한 힘으로 생존해나간다는 사실을 식물에 정통한 어르신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20대 중반인가, 아름답고 힘찬 노랫말에 이끌려 ‘민들레 홀씨되어’를 흥얼거린 적이 있었다. 민들레 홀씨 덕분에 노란 민들레꽃으로 뒤덮이는 밭을 바라보노라면, 홀씨를 뿌리며 멀리멀리 번져나가는 민들레의 진정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구마 순을 심어야 하는 농부 입장에서는 그것도 잠시, 지천에 널린 민들레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비평가였던 크리스토퍼 라시(Christopher Lasch)는 1979년 출간한 명저(名著) ‘나르시시즘의 문화’에서 감성이 이성을 압도하고 개인의 이해관계가 공공의 선을 우선하는 문화에서는 정치가가 인기인이 되리라 예언한 바 있다. 단 이미지가 실체를 가리는 상황에서는 정치가가 내실 있는 정치적 역량으로 평가받기보다, 국민의 인기에 좌우되는 ‘셀럽(유명인·celebrity의 줄임말)’이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가는 순간의 이미지 경쟁에 몰입하게 되고 정책은 인기영합주의로 흐르게 될 것이요,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이미지 정치로 인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미국의 대통령으로는 리처드 닉슨을 따라올 이가 드물 것이다.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 후보 존 F. 케네디에게 패배한 후 재기에 성공한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불명예 퇴진을 했지만, 그의 재임 시절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도움을 받아 일궈낸 핑퐁외교 및 동서화해 정책은 훗날 사회주의권 몰락의 씨앗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0여 년 전 라시의 경고가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는 5월 9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TV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대선(大選) 주자들 간 토론이, 이미지 경쟁에다 네거티브 공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 후보의 실체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역량을 꼼꼼하게 따지기보다, 이미지에 현혹되고 분위기에 편승함으로써 역사에 기록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지 않은가.

이번 대선만큼은 지난날 대통령 선거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미지로 포장되지 않는 후보자의 실체와 진정성을 현명하고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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