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천생 배우 김영애

입력 2017-04-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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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1999년 11월. “아픈 캐릭터 연기를 하면 리허설 때부터 몸이 아파진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만났다. 드라마 ‘파도’에 출연 중이던 그녀는 암의 고통으로 방을 뒹구는 환자 연기를 하면서 안면의 실핏줄이 터졌다고 했다. 수많은 시청자는 그녀의 울부짖음에 눈물짓고, 그녀의 행복에 웃음 지었다. 그녀의 연기는 진정성과 열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2017년 2월. 차인표가 말했다. “선생님은 촬영 초 분장실에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50회 끝날 때까지 살아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목숨 걸고 연기했습니다. 직업을 떠나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다하신 것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췌장암이 재발해 치료와 연기를 병행했다. 대다수 시청자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녀의 연기에 빠졌다. 연기는 그녀의 생명을 연장해준 힘이었고 존재 이유였다.

김영애다. 그녀가 9일 66년간 치열하게 수놓았던 지상의 무대를 떠났다. 동시에 46년간의 연기자 삶도 마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작품과 대중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것도 그녀가 생전 그토록 간절히 되기를 바랐던 ‘좋은 배우’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에 연기자 데뷔를 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신을 연기자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라고 말한 김영애는 ‘수사반장’부터 ‘수선화’ ‘청춘의 덫’ ‘모래시계’ ‘황진이’ ‘애자’ ‘판도라’ ‘변호인’ 그리고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創出力)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선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야망의 전설’과 ‘모래시계’의 어머니를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연기한 김영애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변호인’의 김영애 대사와 연기를 떠올리며 눈물 흘린다. 영혼이 깃든 연기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배역에도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최고의 배우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영애는 연기를 통해 캐릭터의 내적 확신과 생명력을 TV 화면과 스크린 너머의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에 전달하는 진정한 연기자였다.

무엇이 김영애를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로 만들었을까. 드라마와 영화 출연은 최선의 연기를 하겠다는 다짐을 전제하는 것이라며 연기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항암제까지 거부하고 진통제로 고통을 참아가며 연기에 임했던 연기자로서의 책임감이 배우 김영애를 만들었다. 46년 동안 극본과 시나리오를 받는 일에 설레며 연기로 생명을 얻는 캐릭터를 통해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열정이 좋은 배우 김영애를 탄생시켰다. “‘말(馬)’이라는 단어를 장음으로 발음할지 단음으로 처리할지 몰라 이순재 선배에게 혼난 적이 있어요. 단어 하나도 정확하게 발음하고 상황과 감정에 맞게 대사를 살려내기 위해 많이 연습하고 훈련했어요. 연기는 결코 나이에 비례해 발전하지 않기에 매 작품 온갖 노력을 기울여요.” 치열한 준비와 연습이 연기 하나로 수많은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최고의 배우 김영애로 우뚝 서게 했다.

러시아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어떤 배우들은 물고기가 물을 사랑하듯 무대와 예술을 사랑한다. 그들은 예술의 분위기 속에서 소생한다. 또 어떤 배우들은 예술이 아니라 배우의 경력과 성공을 사랑한다. 그들은 무대 뒤의 분위기 속에서 살아난다. 첫 번째 배우들은 아름답지만 두 번째 배우들은 혐오스럽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시청자와 관객은 “김영애는 연기를 사랑하고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소생하는 아름다운 배우”라고 단언한다.

지상에서 하늘로 무대를 옮긴 김영애가 그곳에선 고통 없이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펼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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