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응답하라 대학이여

입력 2017-02-28 10:3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청년실업 시대,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들이 부모에겐 비밀로 한 채 쓸쓸히 홀로 졸업식장에 간다는 기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학생이 귀했던 시절, 대학 졸업식은 온 가족의 경사였다. 땅 팔고 소 팔아 아들 대학 공부시킨 부모는 학사모 쓰고 졸업장을 손에 든 자식 모습만 보고도 배가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대학 졸업식장의 단골 풍경은 부모님께 졸업 가운을 입혀 드리고, 학사모를 씌워 드린 후 무릎 꿇고 넙죽 절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시울까지 붉어지게 하던 풍경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대학 진학률이 10%에 불과하던 당시엔 서울 주요 대학 총장의 졸업식사 전문(全文)이 일간지의 한 면을 장식하곤 했다. 대학 총장의 졸업식사는 대학의 책임을 상기하면서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젊은이들을 향해 인생의 지혜를 전하는 자리였다. 대학 총장은 명실공히 사회의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자리였음은 물론, 정치권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명예와 자부심의 상징적인 자리이기도 했다.

이후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기까지 대학 교육의 대중화가 꾸준히 진행돼왔다. 한데 대중화 현상은 위상의 약화와 양극화라는 역설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전문직이라 할 수 있는 의사와 변호사의 대중화 사례를 보면, 그 숫자가 증가하면서 한편으로는 해당 직업의 위세가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가 집단 내부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학 교육의 대중화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생이 많아진 만큼 대학생 위상은 눈에 띄게 낮아졌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은 취업 사관학교로 전락했는가 하면, 대학 간 위계 서열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 오죽하면 ‘교육은 블루오션이지만, 대학은 사양산업(斜陽産業)’이란 자조적 평가가 회자되고 있겠는가.

지금 우리네 대학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인 듯하다. 신입생 선발 방식은 물론이요, 대학 정원과 전공 분야에서부터 대학 등록금·연구비에 이르기까지 대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관련된 주요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자율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고등학교 졸업생 수의 꾸준한 감소 역시 대학으로선 직시해야 할 위기임에 틀림없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20대 초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와중에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몰려오면서 대학도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력하지만,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오리무중인 상황도 대학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대학 교육의 본질과 철학, 사회적 역할과 위상, 새로운 교육 방법론 등에 대한 공론화를 주도할 전문가 집단이 눈에 띄지 않음은 진정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 교육을 둘러싼 논의가 입시 전형과 졸업 후 취업이란 협소한 주제에 집중되다 보니, 입시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드높이고 취업 컨설턴트들이 몸값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니겠는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미셸 세르는 ‘엄지 세대 :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를 통해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웅성거림’에 주목하고 있다.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엄지 세대는 결국 두 개의 뇌를 보유한 만큼, 단순한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하는 순간 더 이상 교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의 옛 위상을 그리워하는 건 예전 시대를 미화하거나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적어도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는 오명만큼은 벗어나야 하리란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 대학은 쇠락해가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21세기 학생을 위한 교육 시스템과 콘텐츠를 갖추기 위해 전력 질주할 때만이, 사회의 엄혹한 요구에 응답할 수 있으리라.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