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에게 듣는다] 천정배는 누구?

입력 2017-02-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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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고사 인문계 전국수석 ‘목포 천재’ … 인권변호사 활동 DJ 권유로 정계 입문

▲천정배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갖고 “대선 전 개혁연합정부를 꾸려 촛불집회로 대변되는 국민혁명을 실현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기자 foto@

천정배 의원은 1954년 전남 무안군 암태도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목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예비고사에서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목포 3대 천재’라는 평을 받았다.

천 의원은 사법연수원을 3등으로 수료했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서의 법관 임용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후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남대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을 주도하며 국제인권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제15대 총선에서 경기 안산을에 출마, 배지를 달았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에 현역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이목을 끌었다.

2003년에는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고, 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천 의원은 2005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전성기를 맞는 듯했지만,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의 한국 전쟁 관련 발언에 관해 검찰에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가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강력 반발하며 사퇴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07년 1월에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경기 안산시 단원구갑에 도전장을 던져 4선 의원이 됐지만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강행 처리되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2011년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다.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송파을에서 접전을 벌인 끝에 낙선했다. 광주로 귀향한 천 의원은 2014년 7·30 재보선에서 광주 광산을을 노렸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권은희 의원을 전략공천해 배지를 달지 못했다.

이어 2015년 2월에 당을 떠난 그는 그해 4월 치러진 재보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배지를 달았다. 이후 천 의원은 2016년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어 안철수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과 합당해 안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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