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세미나의 웃기는 풍경

입력 2016-12-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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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내가 운영하는 한국언론문화포럼은 2013년 5월 창립 이후 3년여 동안 16차례 세미나를 개최해왔다. 나름대로 꽤 많이 한 셈인데, 사실은 세미나가 뭔지 심포지엄과 뭐가 다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최근에야 진지한 궁금증이 생겨 사전을 찾아 구별법을 알게 됐다. 간단히 말해 한 사람이 발표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자들과 청중이 문답을 하는 것이 세미나다. 특정한 문제에 대해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가 각자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토론회는 심포지엄이다. 세미나는 연구회, 심포지엄은 집단 토론회의로 바꿔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잘 먹혀들지는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세미나의 주제에 따라 청중의 숫자와 열기가 확 달라진다. 민감한 정치적 이념적 현안을 다루는 세미나는 자리를 못 채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11월 개최한 국정교과서 세미나도 그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언론보도’를 주제로 11월 30일 개최한 16차 세미나 역시 그러했다. 발표자에 대한 공박은 물론 청중끼리 다투고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20여 년 전부터 각종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해왔다. 그러나 전문적 식견이 없어 주제 발표를 맡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10여 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이슈였을 때 충청지역 단체가 세미나를 개최한다며 토론자로 참석하라기에 가보았더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주제 발표자는 물론 토론자들 모두 조속한 행정수도 이전과 공약 준수를 거품을 물고 소리쳐 외쳤다.

세미나 개최 취지야 뻔하지만 그래도 논리와 근거를 대며 차분하게 주장을 펴면 더 설득력이 있을 텐데, 그것은 세미나가 아니라 찬성 웅변대회였다. 하도 지겨워 나에게 주어진 발언시간을 대폭 줄이고 마이크를 넘겼더니 사회자가 무척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각종 세미나에서 가장 꼴불견인 것은 주제 발표자보다 더 오래 떠들려고 하는 패널리스트들이다. 발표문을 바탕으로 그에 관한 의견을 밝히거나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발표문과 관계없이 지루하게 또 다른 논문 하나를 쓰는 식이다. 그런 사람한테 걸리면 세미나 진행자는 애가 탄다. 표정으로, 몸짓으로 그만 좀 이야기하라고 주의를 주어도 어떤 사람들은 오불관언이다.

청중도 마찬가지다. 질문이나 의견 제시가 아니라 연설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국정교과서 세미나 때는 주제 발표문이 마음에 들지 않자 마이크를 달라고 하고는 발표자 쪽이 아니라 청중을 향해 서서 한참 선동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만해요” “집어치워!”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자 겨우 발언을 그쳤다. 세미나가 끝난 뒤에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세미나를 하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갔다. 나는 속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발 오지 마세요.

세미나에서 질문을 할 때는 간략하게 요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드물다. ‘예일대’ 출신(내가 예전에 이런 일을 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장황하게 자기 이력을 소개하고는 질문인지 의견인지 딴전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을 보면 정말 시간이 아깝다. 어려서부터 질문을 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 그럴 것이다.

하기야 질문이 전부라고 할 기자들마저 오갈이 들어 손을 들지 못하고, 모처럼 질문을 한 청와대 출입기자가 인터뷰 대상이 되는 세상이니 더 말해 뭐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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