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S] 한미약품, 실속형 M&A 본격화..'불투명한 투자 청산'

입력 2016-06-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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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이어 크리스탈 투자금 회수..확보 자금으로 공장 신설·최소비용으로 신기술 장착

지난해 신약 수출 ‘잭팟’을 터뜨린 한미약품이 인수·합병(M&A)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기술 수출로 증가한 주식가치와 자본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시너지가 불투명한 기존 투자는 과감하게 회수해 향후 글로벌 임상시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한미약품, 크리스탈과 제휴 청산..자금 회수로 공장 건설 등에 투입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은 최근 보유 중인 크리스탈지노믹스 주식 192만3999주(7.85%) 전량을 장내에서 팔았다.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이 각각 67만737주(2.71%)와 125만3262주(5.07%)를 처분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총 201억원을 투자해 크리스탈 2대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이로써 지난 8년간 유지했던 양사간의 전략적 제휴 관계는 당초 기대했던 연구·개발(R&D)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종지부를 찍었다. 한미약품은 이번 주식 처분으로 약 100%의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약품 본사 전경
한미약품과 크리스탈간의 제휴 청산은 예견됐었다. 한미약품은 크리스탈의 신약 기술을 높게 평가해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 한미약품은 신약 개발 부문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크리스탈이 개발 중인 골관절염치료제, 표적항암제 등에 관심을 갖고 시너지를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크리스탈이 허가받은 첫 신약 ‘아셀렉스’의 판권을 한미약품이 아닌 동아에스티가 가져가면서 양사의 오랜 협력 관계가 금이 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한미약품은 아셀렉스의 경쟁 약물인 ‘쎄레브렉스’의 복제약(제네릭) 시장에 진출하며 오히려 크리스탈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한미약품은 지분 투자 이후 크리스탈이 개발 중인 신약 과제들에 깊숙이 관여했다. 하지만 아셀렉스의 임상시험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사간 이견이 커 임상시험 막바지 단계에서는 한미약품이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의 지분 투자 제휴 이후 양사 실무자들은 정기적으로 신약 개발 관련 회의를 열었지만 2010년께 이후 교류는 중단됐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R&D 시너지 등을 기대하는 전략적 투자로 시작했지만 현재 재무적 투자자 역할만 하고 있다"면서 "양사가 윈-윈하는데 역할이 없어져서 지분 매각을 결정했고 크리스탈 측에 매각 의사를 전달했지만 답변이 없어서 장내에서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시너지 불투명한 투자는 청산..'최소 비용으로 투자 효과 극대화' 전략

한미약품의 갑작스러운 크리스탈 주식 처분은 동아제약 투자와도 유사한 흐름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옛 동아제약 지분 매입에 나섰고 2008년 3월 보유 지분율을 9%대로 끌어올렸다. 크리스탈의 지분을 대거 취득한 시기와 유사하다. 이후 한미약품은 지속적으로 “적대적 M&A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한미약품은 “단순투자 목적일 뿐 적대적 M&A와 무관하다”고 했지만 동아제약이 경영권 분쟁을 겪을 때마다 한미약품은 ‘캐스팅 보트’로 주목받았다. 2013년 동아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의결하는 임시주주총회에서 한미약품은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하며 동아제약 경영진을 견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제약이 2013년 지주사 전환 이후 주식 교환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분율을 확대하면서 한미약품의 영향력은 축소됐고, 한미약품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보유 중이던 동아쏘시오홀딩스와 동아에스티 주식을 모두 팔았다. 한미약품은 지분 매입에 총 734억원을 투입했고 지분 매각에 따른 시세 차익으로 424억원을 가져갔다.

크리스탈과 동아제약의 지분 처분 사례를 보면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면서 영향을 미쳐왔지만 양사간 시너지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주식을 처분해 시세차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대규모 기술 수출을 성사시키며 자금 여력이 과거보다 호전된 상태다. 지난 1분기 기준 한미약품의 현금성 자산은 4388억원으로 2012년 647억원, 2013년 751억원, 2014년 567억원 2015년 1310억원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만 5125억원을 신약 기술료로 받았다.

향후 기술 수출한 신약의 임상 단계가 진전될수록 기술료 유입에 따른 수입은 늘어나지만 여유 부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한미약품은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해 1440억원을 들여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신축키로 했다. 사노피에 기술 수출한 당뇨신약의 경우 수천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되는데, 현재 보유한 공장으로는 임상시험용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외 공급 물량이 증가할 것을 대비해 2, 3 공장 건설도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지난 1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신약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봄에 착공하는데 3000억원이 소요된다"며 시설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최근 평택에 위치한 세파항생제 공장 매각을 검토했다가 매각 계획을 백지화한 바 있다.

한미약품은 외부 신약 과제 도입을 위해서도 자금 비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1월에는 ‘제1회 한미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을 열어 벤처기업이나 대학 연구진들이 개발한 유망 신약 기술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선포했다.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은 “현재 검토 중인 신약과제만 수백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대규모 M&A로 외형을 확대하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실속형 M&A’를 구사하는 분위기다. 지난 9일 한미사이언스가 인수한 제이브이엠이 대표적이다.

한미사이언스는 의약품 관리 자동화 시스템 기업 제이브이엠을 인수하면서 투입한 1033억원 중 현금 투자는 약 26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한미사이언스 주식(1.1%)를 제이브이엠에 넘기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기술 수출 이후 주가가 급등하면서 가능해진 투자 형식이다. 한미사이언스는 주당 15만6424원에 처분했는데 신약 수출 성과가 나기 전인 2014년 종가 1만5204원보다 1년 반만에 무려 10배 이상 오른 금액이다. 신약 성과로 주가가 오르자 현금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주식을 활용해 M&A를 시도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초 미국 안과전문 벤처기업 알레그로에 2000만달러(약 217억원)를 투자하는 전략적 투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알레그로의 지분을 획득하고, 알레그로가 개발 중인 망막질환 치료신약 ‘루미네이트’의 한국·중국 시장 개발·판매권을 확보하는 조건이다. 한미약품은 습윤드레싱 메디폼을 만드는 ‘알짜 벤처기업’ 제네웰의 주식(4.06%)도 보유 중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현재 국내외 다양한 업체들과 기술 제휴 및 투자를 검토 중이다”면서 “조만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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