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직접 키운 ABC마트 겨냥한 안영환 "토종 슈마커로 꺾겠다"

입력 2019-08-09 11:14수정 2019-08-09 14:13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7일 만난 안영환 슈마커 대표는 지난 31년간 '신발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전보다 더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7일 이투데이와 만난 안영환 대표는 인터뷰가 진행된 2시간 내내 담담했다. ABC마트를 한국에 들여온 그가 부당하게 쫓겨나는 과정, 슈마커를 인수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안 대표는 "‘이런 일본 회사도 있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라며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형사소송에서 다 공개됐고, 서류로도 입증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ABC마트는 안 대표의 손에서 시작됐다.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ABC마트가 불매 운동 대상에 포함돼 있지만, 그가 설립한 ABC마트코리아는 신발 유통체계를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종합상사인 선경물산(현 SK네트웍스)에 입사하면서 신발과 처음 인연을 맺은 안 대표. 이후 거래처였던 일본 ABC마트에 자체 디자인한 기획 상품들을 제안했다.

안 대표는 “당시 기획한 상품이 10년 동안 팔 수 있는 ‘스테디셀러’가 됐다”면서 “일본 ABC마트가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일로 마사히로 미키(이하 미키) ABC마트 회장이 같이 사업을 하자고 했다. 마침 사업에 대한 욕구가 있어 동업을 시작했고 ABC마트코리아를 설립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일본 ABC마트가 사업 자금으로 30억 엔(당시 약 240억 원)을 빌려줄 만큼 우호적 관계였다”라고 말했다. 금리가 높은 한국보다 그쪽에 빌리는 것이 안 대표에게도 이익이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처음 밝히는 뒷이야기, 동업자의 ‘속셈’

그는 ABC마트코리아 대표로 부임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승승장구했다. 회사는 설립한 지 6년 만(2008년)에 매출 1000억 원, 영업이익 150억 원의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듬해 일본 ABC마트 측에서 출자전환(기업의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을 요구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차입금이 두 배 가까이 불어났을 때다. 안 대표는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넘어갔지 일이 커질 줄 몰랐다. 돌이켜보니 지분을 늘려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의 반발로 무위에 그쳤으나, 이때부터 파열음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일본 ABC마트는 한국에 있는 상품 공급 협력사를 공략했다. 인레이(Inlay)라는 회사를 차지해 공급, 판매를 독점하려 한 것이다. 일본 ABC마트는 인레이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이후 차입금이 아닌 ‘투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안 대표는 “일본 ABC마트는 인레이 대표가 횡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사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고, 돈도 투자금이 아닌 차입금이라는 게 밝혀졌다”라고 전했다. 이자와 원금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실사단은 돈의 성격을 '차입금'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그는 이어 “실사 결과에 인레이 대표가 ‘외환관리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라는 부분을 문제 삼았고, 결국 인레이 대표는 법리를 다투기 전 회사를 그만뒀다”라고 말했다. 일본 ABC마트가 인레이를 차지하고 일본 수입 단가를 낮춰 이익을 높이려 일을 벌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슈마커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 상품인 PB상품도 내놓는다. 타사와의 차별성을 위한 것이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안 대표를 향한 '칼날'

일본 ABC마트는 다음으로 ABC마트코리아를 노렸다. 재차 대여금의 출자전환을 요구했다. 안 대표가 거절하자, 표 대결로 가겠다고 압박했다. ABC마트코리아 지분은 51:49. 불리한 쪽은 안 대표였다.

그는 차선을 택했다. 지분을 조금 내주고 조건을 걸었다. 적절한 시점에 IPO(주식공개상장)를 하고, 경영권을 보장받기로 한 뒤 이를 문서로 만들었다. ABC마트코리아가 설립된 시점부터 약속했던 사항이지만, 문서화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 대표는 “이렇게 했는데도 그쪽에서 배임·횡령이라고 겁박하더라. 한국거래소에서 진행한 상장 심사 때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만큼 깨끗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이후 일본 ABC마트는 안 대표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안 대표는 “지분이 33%가 있는 만큼 '사퇴하지 않겠다'라고 했지만, 그들은 증자로 희석시키겠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결국 2011년 3월, 그는 자신이 키운 회사에서 쫓겨났다.

일본 ABC마트는 안 대표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배임, 횡령, 정보 폐기로 고발했다. 대표로 근무하면서 불리한 자료를 폐기했다고도 주장했다.

안 대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가 컴맹이다. 엑셀을 할 줄도 모른다”라면서 “하지만, 정보 폐기는 물론이고 배임, 횡령도 모두 법정에서 무죄로 결론 났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당시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이 이 사건을 보고 ‘배임·횡령 사건이 이렇게 완벽하게 무죄가 나온 건 처음'이라고 했고, 담당 변호사는 특진했다”라고 덧붙였다.

'흥신소'를 고용해 안 대표의 뒤도 밟았다. 안 대표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겠냐'라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1500만 원이면 도ㆍ감청도 할 수 있다는데, 내 뒤에 붙인 흥신소에 2000만 원을 줬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등골이 오싹하더라"고 털어놨다.

연이은 소송에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다는 안 대표. 양치질할 때 30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칫솔질을 하면 헛구역질이 자꾸 나와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안 대표는 슈마커 외에도 JD스포츠 대표를 맡고 있다. 두 회사의 시너지로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포부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슈마커로 업계 1위 하겠습니다"

모든 소송이 정리된 후, 더는 사업을 못 할 것 같다고 판단해 집도 교외로 옮겼다. 식물을 키우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었을 무렵, 슈마커를 인수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슈마커는 국내 토종 브랜드로 ABC마트보다 먼저 생긴 신발 멀티숍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안 대표의 사업가 본능이 꿈틀댔다.

그는 “제의를 듣자마자 피가 솟더라. 본능적으로 이 일을 해야겠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어 "변방을 돌고 있던 슈마커를 살릴 비책도 고안했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비책이 바로 의류ㆍ신발 제조 유통사인 'JD스포츠'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JD스포츠로 안 대표는 시장을 차별화해 소비자에게 접근할 생각이다. 슈마커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신발 멀티숍이라면 JD스포츠는 '프리미엄 고객'을 위한 브랜드다. 한정품 신발은 물론 의류도 판매한다.

안 대표는 "슈마커는 PB상품(대형소매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고, 생활 속에 필요한 상품들을 개발해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기 다른 고객을 겨냥한 다양성과 타사가 취급하지 않는 물품을 판매하는 차별성도 더할 것이다. 새로운 유통체계와 전자상거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상품과 상품을 쓴 고객이 만드는 콘텐츠를 결합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안 대표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고록 연재를 시작했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그는 "신발로 국내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31년 동안 '신발 외길'을 걸어온 그는 "당당하게 경쟁해 승리하고 싶다"라는 바람도 내비쳤다.

현재 슈마커는 전국 13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 약 1100억 원 기업으로 성장했다. 슈마커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 논란의 중심에 놓인 ABC마트의 대안이 되겠다는 게 안 대표의 바람일까.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