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日수출 규제 틈타 폭등한 'D램 가격'…"억울한 상인, 웃는 중간 도매상"

입력 2019-07-16 18:49수정 2019-07-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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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 규제 소식과 맞물려 D램 가격이 폭등했다. 3만 원에 판매되던 DDR4 8GB 메모리는 한때 5만 원대 중반을 찍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지난주를 기점으로 국내 PC부품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매장의 D램 반도체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최근 일본이 불화수소 등 반도체 공정의 필수 소재 3종을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하자, 일제히 D램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이달 초 삼성전자의 DDR4 8GB 판매가는 3만~3만2000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일본 수출 규제가 발표되자 곧바로 5만 원대로 폭등했다. 단 며칠 만에 70% 가까이 가격이 오른 셈이다. 현재는 4만 원대 중반으로 다소 진정된 국면이지만, 그럼에도 D램 가격은 이전보다 50%가량 비싸졌다.

PC 조립 수요가 늘어나는 방학 시즌에는 통상 D램 가격이 상승하는 편이지만, 업계가 보는 눈은 다르다. 디램익스체인지 등 글로벌 D램 시세 사이트의 경우 큰 가격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부상하자, 일부 판매업자들이 이를 틈타 D램 가격을 인상해 잇속을 챙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통상 현재 시중에 풀린 D램은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영향을 받기 전에 생산한 물량이다. 또한 수출 규제 품목 중 하나인 포토리지스트 등은 D램보다는 10나노 이하의 시스템 칩셋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는 만큼, 직접적인 영향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DDR4 8GB 메모리 가격 비교. 현재는 4만~4만5000원 수준으로 가격이 물러선 상황이다. (출처=네이버 가격비교 캡처)

“D램 요즘 없어서 못 팔아요. 뉴스 봐서 아시잖아요. 반도체 제조업체가 공급량을 줄이니까 당연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죠.”

기자가 16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만난 한 상인은 D램 가격 폭등에 대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제조사가 물량을 줄인 만큼,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상인은 D램 가격 인상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용산 선인상가에서 PC부품을 판매하는 나모 씨는 “사실 D램 팔아 남는 게 없어요. 중간 도매상이 다 가져가는 구조인데, 다들 상인들이 가격 담합했다고 해요. 좀 억울하죠”라고 하소연했다.

현 상황에서 실질적인 잇속을 차린 이들은 일반 상인이 아닌 '중간 도매상'이라는 것. 상인들이 'D램 가격을 담합했다'라는 말에 억울하다고 입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간 도매상은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로부터 물건을 받아 이를 다시 판매점으로 공급한다. 중간 도매상의 공급가는 사실상 소매 판매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다.

부품 및 PC 주변기기 판매점을 운영하는 최성원 사장은 "중간 도매상으로부터 납품받는 가격이 정해져 있는 만큼, 하부 상인들이 할 수 있는 가격의 운영 폭은 극히 적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소비자가 손쉽게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는 시대"라면서 "100원, 1000원에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나혼자 소매가를 올린다고 돈을 벌 수 없다"라고 상가 분위기를 귀띔했다.

본지가 한 컴퓨터 전문업체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6일 기준 중간 도매상인 A사는 삼성전자 DDR4 8GB 메모리를 4만1000~4만2000원에 공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받은 판매점들은 약간의 이윤을 붙여 4만5000~4만6000원 수준에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D램으로 큰 이윤을 보기 어려운 구조다. 규모가 큰 판매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4만 원대에 8GB 가격이 형성됐지만, 많은 상인들은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인석 기자 mystic@)

용산에서 10년째 조립 PC를 판매해온 허모 씨는 “규모가 큰 판매점도 D램을 많아야 30~40개 정도를 가지고 있고, 작은 곳은 10개 내외를 가지고 영업한다”라면서 “최근 중간 도매상으로부터 D램을 들여오는 비용이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결국, 일본 수출 규제로 돈을 버는 쪽은 일반 판매점 상인이 아니라 중간 도매상이라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한 관계자는 “중간 도매상이 수천 개에서 만 개까지 D램을 받아와 이를 판매점에 뿌리는 구조”라면서 “이들이 정한 가격에 판매점이 물건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용산의 소형 판매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은 가격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라고 유통 구조를 설명했다.

반면, 중간 도매상인 F사는 "국내 공급 물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매일 D램 가격이 바뀌고 있어 말씀드리기 어렵다"라면서 "중간 도매상이 수십 개 있는데 납품 가격은 대동소이하다. 더 정확한 얘기는 해주기 어렵다"라고 짧게 답했다.

물량 부족 때문이라는 중간 도매상의 주장에 대해 D램 제조업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공급에 차질이 없을뿐더러 감산 계획도 없다”라며 "당분간 공급이 부족할 일은 절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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