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집단지성…'나무위키'를 아직도 모른다고?
입력 2019-03-27 15:30

▲나무위키 메인페이지인 '나무위키:대문'. 이 대문 너머에 이 세상 삼라만상의 지식이 들어있다. (출처=나무위키)

기자는 현재 부업 삼아 이투데이의 기자로 재직하는 중이다. 본업은 어느 위키 사이트를 탐사하는 일이다. 이 글은 한 위키 사이트의 역사와 비전,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은 나무위키를 그대로 베껴서 작성됐다.

나무위키란?

위키문서의 편집 권한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웹사이트를 말한다. 대체로는 특정 단어를 설명하는 사전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널리 알려진 ‘위키백과(영문명 위키피디아)’대표적인 위키의 형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위키가 위키피디아라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단일 위키나무위키다. 문서 규모 1위, 편집 빈도수 1위. 위키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 사이트 이용률로만 따져봐도 9위 규모다.

기자가 기억하는 처음 접한 나무위키(당시 명칭 엔하위키)의 문서는 ‘아서스 메네실’이었다. 블리자드의 게임 ‘워크래프트’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다. ‘아서스 메네실’ 문서에서 이런저런 관련 문서를 연속 3시간째 타고 넘다가 어느 순간 ‘2차 빈 공방전’을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다.

기자가 특별히 할 일 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랬던 게 아니다. 독자 여러분도 일단 나무위키를 한 번 접속하게 되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꺼라. ‘문명’보다도 빠르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타임머신!

▲기자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유명한 짤방. (출처=트위터)

나무위키의 역사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라는 문화 콘텐츠가 있다. 알다시피 로봇 ‘건담’이 전투를 벌이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거대로봇 만화다.

건담을 좋아하는 팬들은 건담에 나오는 전함의 이름을 따 ‘엔젤하이로(현 명칭 NTX)’라는 팬사이트를 만들어 커뮤니티를 이뤘다. 엔젤하이로 이용자들끼리 건담 관련 정보를 모으기 위해 사이트 내에 위키 엔진 하나를 달아뒀는데 이 위키의 이름은 ‘엔젤하이로 위키’, 약칭 ‘엔하위키’였다.

▲이게 바로 건담. (출처=나무위키)

‘엔하위키’는 거듭된 성장을 거치며 모체 사이트인 엔젤하이로의 트래픽을 뛰어 넘어 버렸다. 세상의 오만가지 지식이 축적되며 건담과의 연결고리도 점차 약해졌고, 결국 엔하위키는 엔젤하이로와 분리됐다. 2013년 2월 1일, 정식으로 분리되며 이름도 ‘리그베다 위키’로 바뀌었다.

분리 이후에도 ‘리그베다 위키’는 무럭무럭 자라 상당한 트래픽을 확보한 사이트로 성장했다. 2015년 3월 경엔 이 급속한 성장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사건이 발생했다. 위키 운영진 측에서 위키를 통해 영리추구를 하던 정황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각각의 이용자들이 공들여 편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운영진이 영리 추구를 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은 겉잡을 수 없이 격화됐고, 많은 이용자들은 자신이 편집한 문서를 하나 둘씩 지우는 ‘기여철회’를 선언했다. 그렇게 ‘리그베다 위키’는 멸망했다.

▲2015년 3월. 리그베다 위키 최후의 날. (출처=나무위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 불탔을 때의 느낌이 이와 같았을까? 이런 사고로 사라지기엔 너무나 아깝고, 또 너무나 방대한 정보들이었다. 이런 공감대 속에서 무너지기 직전의 ‘리그베다 위키’의 데이터를 가져와 생성되는 위키(일명 엔하계 위키)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잠시 도래했었다.

2015년 4월. 결국 깔끔한 인터페이스에 다량의 유저가 모인 어느 엔하계 위키가 ‘리그베다 위키’의 데이터 대부분을 흡수한 국내 최대 규모 위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사이트의 이름이 바로 나무위키였다.

나무위키의 영향력

‘흑역사’라는 말이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칭하는 신조어다. 표준어도 아니고 고어(古語)도 아닌 이 단어의 이같은 용례는 나무위키에서 처음 쓰였다.

▲이제 공중파 방송에서도 흔히 쓰이는 신조어, '흑역사'. (MBC '라디오스타' 캡처)

원래 ‘흑역사’는 건담 시리즈에서 쓰인 단어다. 건담 시리즈 중 ‘∀건담(턴에이 건담)’이란 작품에서 ‘특정 세력이 감추고자 했던 인류의 과거사’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었다. 이를 건담 팬이 많았던 과거 ‘엔하위키’에서는 ‘누군가가 숨기고 싶은 자신의 과거’ 내지는 ‘잊고 싶을 만큼 끔찍했던 암흑기’ 정도의 의미로 문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례는 퍼지고 퍼져 공중파 방송에서까지 쓰이는 A급 신조어의 반열에 이르렀고, 이젠 대부분의 국민이 ‘엔하위키’에서의 용례로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 이 단어의 발음이 [흥녁싸]냐 [흐격싸]냐를 두고 영원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넘어가자

이제 나무위키는 작은 문화 현상을 넘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까지 한다. 지난 1월 조해주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당시, 나무위키의 이력을 지운 사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임명 이후인 이달 15일에도 동일한 사안으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 일었던 나무위키에서 삭제된 글이란 조해주 후보자의 문재인 선거캠프 활동 이력을 말한다. 특정 후보의 선거캠프 활동 경력은 중립성이 최우선시 되는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기에 부적절한 이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 당시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은 조 후보의 나무위키 이력 삭제 정황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대한민국 재선 국회의원이 장관급 인사 국회 청문회에서 일개 인터넷 위키 사이트의 문서 삭제 의혹이 사실이냐며 질타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정치인도 글귀 하나 함부로 지울 수 없는 '그 위키 사이트'의 위상…. 흡사 조선왕조실록을 보는 듯 하다.

나무위키의 객관성

나무위키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단지성’이다.

먼저 나무위키는 객관을 포기한 서술을 지향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반적인 위키가 지향하는 ‘중립적 관점(NPOV : Neutral Point Of View)’를 따르지 않는다.

나무위키의 어느 인물, 조직, 사물, 관념 등을 비판할 때 굳이 객관적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비판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비판하고, 칭찬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칭찬한다. 연예인, 정치인, 심지어 종교에 대한 문서마저도 나무위키에 성역이란 없다.

▲나무위키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열린 토론 중 일부. 이렇게 의견대립이 첨예한 사안에는 끝없는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간다. 이 문서에 현재까지 달린 토론 주제의 갯수는 80개다. 별 이상한 뻘토론도 있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출처=나무위키)

그렇다고 나무위키가 아주 주관적인 위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무위키는 특정 대상을 일방적인 관점에서만 서술하지 않고, 찬‧반과 호‧불호 등 여러 관점의 시선을 담는다. 어떤 문서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대립이 커지면 토론을 연다. 토론은 토론 참여자들이 적당한 합의점을 찾을 때 까지 이어지며, 끝끝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재요청에 따라 운영진의 합의를 거쳐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종합하자면 ‘무수히 많은 위키 이용자들의 끝없는 문서 수정과 토론을 통해 한 대상에 대해 되도록 다양한 시각을 치우치지 않도록 함께 담는 것’나무위키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겠다. ‘집단지성’이라는 모토가 아깝지 않은 지향점이다.

나무위키의 한계

‘무수히 많은 시각을 담은 집단지성’이라지만 한계는 있다.

먼저 진정한 의미의 ‘다양한 시각’이 맞는가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나무위키의 다양한 시각이란 ‘나무위키 이용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의미한다. 20~30대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나무위키에서는 남녀노소 다양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공정하게 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는 나무위키 전반이 아니라, 각 문서에도 해당하는 한계점이다. 아이돌 그룹의 문서에는 주로 그 그룹의 팬덤이 편집에 참여하고, 특정 만화나 애니메이션 역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범국민적 공분을 사는 이슈에 관한 문서는 너나없이 달려들어 반론과 공정성보다, 원색적인 감정과 분노를 앞세운 비난이 문서를 가득 채우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나무위키는 그 자체로 참고자료가 되기는 어렵다. 언론사 보도, 대학 과제나 논문 등의 자료 출처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여러 이용자가 함께 모은 자료와 관점 등이 한 사이트에 망라돼 있기 때문에, 특정 이슈나 개념에 대해 1차적으로 훑어보기엔 더 없이 좋은 자료가 돼 줄 순 있겠다.

이밖에도 나무위키의 특징, 역사, 영향력, 객관성, 한계 등에 대해 다뤄볼 만한 이야기가 더 많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요즘엔 나무위키에서도 이 표현 잘 안 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