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대화방] 화장실 쓰려면 커피 사야하나?…카페 화장실, 공공적 공간일까 사유지일까

입력 2019-02-2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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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길을 가다가 급작스러운 신호로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화장실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카페다. 하지만,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음료를 구매해야 하나, 말아햐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Toilet'. 화장실의 영어 표기다. Toilet은 망토를 뜻하는 프랑스어 'toile'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화장실이 너무 급할 때, 망토와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냈다.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은 길 한가운데서 업자가 빌려주는 망토로 몸을 가린 뒤, 양동이에 볼일을 보는 식이었다. 일명 ‘급똥’ 해소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어느 곳을 가도 화장실을 개방하는 시설이 산재해 있다. 공공기관 건물은 물론 백화점, 서점, 카페 등의 화장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곳은 카페 화장실이다. 백화점이나 호텔처럼 무작정 입장하기에 위압감이 들지 않으면서, 깔끔한 인테리어는 물론 최신 비데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급똥’ 해소 욕구를 저격한 앱도 등장했다. 2017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스타트업 ‘굿투고(Good2Go)’다. 굿투고는 사용자의 위치를 확인한 뒤, 현재 이용 가능한 인근 카페 화장실 위치와 가는 길을 안내한다. 화장실은 청결함과 거리를 기준으로 선별된다. 앱 사용 전에는 선결제해야 하는데, 1일 이용권은 2.99달러(약 3400원), 1주일은 14.99달러(약 1만7000원), 1개월은 19.99달러(약 2만3000원)다.

결제가 끝난 사용자는 앱이 발급해준 QR코드를 통해 화장실에 입장한다. 이후 화장실 시설 관련 후기를 남기거나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용객 처지에서는 굿투고가 매우 유용한 앱이지만, 카페 사업주로서는 화장실만 사용하는 손님이 매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장실을 개방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굿투고는 이런 사업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을 맺은 카페에 출입문 QR코드 시스템, 기저귀 가는 공간, 비데 등을 설치해 준다.

국내 많은 카페가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지만, 굿투고처럼 시설을 개선해주거나 관리에 도움을 주는 상생의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일부 카페는 음료 구매자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어록을 설치하거나, 문을 잠그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카페 내 화장실은 공공재일까, 사유재일까? 평소 ‘급똥’이 자주 온다는 곽진산 금융부 기자와 나경연 뉴스랩부 기자가 화장실에 관한 모든 것을 속 시원히 얘기해봤다.

▲미국에서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본인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 화장실을 안내해주는 앱이 출시됐다. '굿투고'라는 앱은 화장실을 사용한 뒤, 시설과 관련한 후기와 평점을 남길 수 있다. (출처='굿투고' 유튜브 영상)

◇생리현상, 생명과 직결된 문제

곽진산 기자(이하 곽): 일단 화장실이 공공재인지 사유재인지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화장실은 생명과 직결되는 곳이야.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고. 화장실은 이유 불문 누구에게나 개방돼야 하는 곳이야.

나경연 기자(이하 나): 물론 생리현상이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중요한 문제인 것은 맞아. 그래서 나라에서 공공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고. 또 지하철역 안에는 화장실이 다 갖춰져 있잖아? 공공 화장실이 있는데 사유시설인 카페 화장실도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부족하지 않을까.

곽: 공공기관은 저녁 6시 이후에는 대부분 문을 닫아. 대표적인 것이 주민센터, 동사무소 건물이야. 지하철역 화장실도 막차가 지나간 후에는 이용이 불가능해. 그 외의 시간에 급작스럽게 화장실에 가고 싶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 외의 시간에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카페 화장실이 열려있다면 그 화장실을 개방해주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지.

나: 하지만 카페라는 공간은 사업주의 공간이야. 그 사업주가 카페 이용객들에게만 화장실이란 공간을 제공한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그 화장실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급하는 비용 등등 모든 것이 사업주의 주머니에서 나와. 하지만 화장실 이용객들은 어떠한 비용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주로서는 명백한 손해지.

곽: 그 공간이 사업주 사유지라고 해서 화장실 이용객들이 그 공간은 자기 방처럼 점유하는 게 아니잖아. 거기서 죽치고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빌려 쓰는 거야. 사업주가 이런 잠깐의 이용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어. 막상 본인이 화장실이 당장 급하다면 사유지건 공유지건 이런 거대한 논제를 생각할까? 그냥 화장실 표지판 보고 냅다 달리겠지. 물론, 화장실 관리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 것은 맞겠지. 화장실 사용에 만족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화장실 이용 금액을 낼 수 있게 한다든지 여러 방법이 있을 순 있어.

▲한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공 화장실에 바라는 것 중 하나가 '페이퍼 타월'이었다. 대부분 카페는 페이퍼 타월을 구비해둔 반면, 공공 화장실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게티이미지뱅크)

◇화장실, 본능을 존중하는 ‘시혜적’ 공간

나: 그럼 차라리 화장실 비용을 지불하지 말고, 음료수를 사 먹으면 되잖아. 왜 음료수는 사 먹기 싫어하면서 이용료는 낸다고 하는 거야? 화장실 이용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서 같은 지출 아니야?

곽: 아니야. 전혀 다른 문제야. 나는 화장실이란 공간은 시혜적인, 베풂의 공간이라고 생각해.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 배설 욕구를 해결하게 해주는 공간이잖아. 음료수를 구매했으니 이용할 수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용료는 베풂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 단순히 공간 사용에 대한 기계적인 거래가 돼선 안 돼.

나: 인간의 본능을 존중해주는 공간. 화장실을 이렇게 정의한다는 거지? 그리고 사유지든 공유지든 이 공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개방돼야 한다는 것이고. 물론 화장실 이용을 위해 커피를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겠지. 커피 구매 고객은 카페 안의 일정 공간을 몇 시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함께 구매하는 거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개방하면 화장실에 비 카페 이용객들이 몰려 오히려 카페 이용객들이 이용을 못 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날 것 같은데?

곽: 물론 그런 불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 카페 음료를 구매했다는 것은 내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도 구매한 것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핵심이 있어. 내가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게 할 권리까지 구매한 것은 아니야. 음료수를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권한까지는 구매할 수 없다는 거지. 사람들이 몰려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건 음료수를 구매한 고객들이 몰려도 불편한 것이니까. 그리고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카페 들린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음료수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사업주 입장에서 꼭 손해라고 볼 수는 없지.

▲화장실이 급할 때,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이뤄진 화장실 팻말을 찾아 빠르게 돌진할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공유지의 비극, 그 해결책은?

나: 카페 화장실을 모두에게 개방했을 경우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공유지의 비극’ 사태야. 이용객들이 많아질수록 화장실은 걷잡을 수 없이 더러워지겠지. 최근 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어. 스타벅스는 지난해 5월부터 하워드 슐츠 당시 회장 결정에 따라 음료 구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방문객에게 화장실을 개방하기로 했어. 이에 화장실 이용객이 급증했고, 손님과 직원 모두 불편을 겪으면서, 다시 화장실을 음료 구매 고객으로 제한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

곽: 스타벅스‘만’ 화장실을 개방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해. 개방된 곳이 여기뿐이니 이곳으로 모두가 몰리는 것이지. 아예 모든 커피 전문점이 화장실을 개방해서 이용객들이 곳곳으로 분산된다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 오히려 화장실 개방에 대한 안 좋은 생각들이나 편견을 버리고, 모든 사업장이 화장실을 개방한다면 이용객들은 더 편리할 것이고 사업장도 예상치 못한 매출을 올릴 수도 있을 거야.

나: 공유지의 비극 해소법이 공유지화라니… 참신한 대안이네. 물론 카페 자체는 사유재산이지만, 그 안의 화장실이란 공간은 공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기도 해. 방금 들었던 스타벅스 아르바이트생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야. 음료를 구매하지 못하면 화장실 이용이 불가하냐고 물었더니, 화장실은 편의시설이기 때문에 구매 여부에 따라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인간인 이상,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접근권을 더 심층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곽: 중요한 지적이야. 커피를 구매해야지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면, 5000원도 없는 사람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말라는 뜻인이야. 이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옳지 않아. 만약, 전국 모든 카페가 구매 고객에만 화장실을 개방하면, 노숙자 같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거야. 그럼 온 거리가 똥 바다가 되겠지. 이건 충분히 현실적인 얘기 아닌가? 과거 유럽 사람들이 길거리의 똥을 밟지 않으려고 하이힐을 신었던 것처럼, 남자들이 하이힐을 신는 시대가 오게 될 수도. 이걸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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