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이코노미] 영화 '마약왕' 이두삼, 21세기 워렌버핏?…대마초 합법화와 '그린러시' 열풍
입력 2019-01-28 13:52
[이투데이 나경연 기자]

▲"돈은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아니라 정승한테 쓰는 것이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이두삼의 좌우명이다. 이두삼은 고위급 관료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쏟아붓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두삼을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사진제공=쇼박스)

"이 나라는 내가 먹여 살렸다 아이가."

과장이 아니다. 영화 속 이두삼(송강호 분)은 실존 인물 이황순을 모티브로 한다. 마약 밀수꾼 이황순은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일본 내 마약 제조가 불가능해지자, 국내에 직접 마약 제조장을 만든다. 자신의 주택 안 제조장에서 70억 원어치 마약을 제조해 팔았다. 경찰은 이황순 검거 당시 이곳에서 300억 원 가치의 마약 재고를 발견한다. 1980년대 돈 가치로 기록된 금액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원래 히로뽕은 일본이 일제강점기 당시 노동을 쉽게 착취하기 위해 널리 활용됐다. 동시에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참전 군인에게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광복 후 마약의 쓸모가 없어진 일본은 마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문제 삼으며 전면 금지령을 내린다. 이에 따라 마약 제조공장은 점차 한국으로 숨어든다. 여기에 한국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이황순은 마약 제조부터 유통까지 동아시아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큰 손이 된다.

▲"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믄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 이두삼은 엄청난 수출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리고, 박정희 대통령 눈에 들면서 대통령이 주는 기업인 상까지 받게 된다. (사진제공=쇼박스)

마약의 가치는 이황순의 시대를 넘어 2019년에도 치솟는 중이다. '그린러시'가 불러오는 경제적 파급 효과 덕분이다. 그린러시는 의료용 및 기호용 대마초가 합법화된 지역 및 국가로 돈과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19세기 금광 발견 지역에 자본과 노동력이 쏠렸던 '골든러시'에서 유래했다. 전문가들은 대마초를 전면 합법화한 캐나다와,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미국 내 30개 주의 목적은 막대한 세수 확보와 고용 창출에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캐나다는 2001년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이후 암시장 규모가 커지자, 지난해 10월 대마초 전면 합법화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택했다. 우루과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고, G7 국가 중에서는 최초다. 현재 캐나다 대마초 시장은 5조 원 규모로, 연내 6조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캐나다와 미국에 상장된 주요 대마 기업 34개 투자 가치는 4년 만에 224%가 뛰었다. 캐나다 대마초 회사 캐노피그로스는 전면 합법화를 앞두고 4조4000억 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이두삼은 마약을 하기 시작하면서 불안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집 안에 수십 대의 CCTV를 설치해두고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는다. (사진제공=쇼박스)

우리나라도 의료용 대마 합법화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1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용 대마 합법화법이 통과됐다. 해당 법에 따르면 의료진이 치료 목적으로 대마를 처방할 수 있고, 환자는 처방받은 대마를 소지할 수가 있다.

우리 신체에는 엔도르핀과 똑같은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대마 성분이 생성된다. 이게 부족하면 특정 병이 발병된다. 신경질환·면역질환·신경정신질환·통증·불면증 등 다양한 질환에 대마 성분이 약으로 쓰이는 이유다. 한국도 1970년 대마 단속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마 자체가 일종의 가정상비약로도 쓰였다. 특히 가축을 키우는 집에서는 소가 아플 때 약 대신 대마 삶은 물을 여물로 먹이기도 했다.

1900년대 모든 국가가 약으로 써왔던 대마를 국제적으로 규제했다가, 지금은 그 규제를 다시 풀고 있다. 현재 대마를 전면 합법화한 캐나다에서는 대마 초콜릿, 대마 맥주 등 대마초 신제품 개발에 착수하고 있고, 의료 대마를 합법화한 국가들은 제약산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의료 대마 합법화가 결정되면서 다국적 대마 기업들이 국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두삼의 부인은 "너는 그 욕심 때문에 망할 것이다"며 일침을 가하지만, 이두삼은 결국 마누라와 가족까지 버리면서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사진제공=쇼박스)

이두삼이 주물렀던 마약 시장은 새로운 경제적 노다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대마 시장 규모가 연간 34.6%씩 성장, 2025년에는 165조29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두삼이 100만 원으로 시작했던 마약 산업은 이제 성격을 달리해 160조 원 규모의 신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루과이는 2017년 대마초 합법화 이후 대마초 중독자가 1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 내 대마를 합법화 한 일부 주에서는 환각 증상으로 인한 운전사고가 급증했다. 영화 속 이두삼 역시 마약에 손대기 시작한 이후 불안증세를 동반한 정신병에 걸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의 길에 들어선다.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과 위험성 사이에서, 국가가 균형을 찾아가는 일. 의료용 대마 합법화 국가에 이름을 올리고, 대마 산업의 뜨거운 시장으로 떠오른 시점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정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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